‘상하이의거 제90주년 기념 나라사랑 체험한마당’ 개최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등 현충시설, 독립운동 인물과 사건 체험교육
 [2022-04-29 오후 6:48:00]

매헌기념관, 서예전시회탄신음악회특별전시회시낭송대회 등 진행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관장 명노승)은 서울경기권 현충시설과 협력해 429일 매헌기념관 주차장 일대에서 상하이의거 90주년 기념 나라사랑 체험한마당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부겸 국무총리, 명노승 기념사업회장, 이종찬 90쥬년기념사업 추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 명노승 기념사업회장이 기념식사를 하고 있다.

매헌기념관에 따르면 현충시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분들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서울경기권 10개관이 모여 실시한 이번 체험한마당은 각 기관의 독립운동 인물과 사건을 체험교육행사로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상하이의거 90주년을 기념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윤봉길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고취시키고자 기획된 이날 체험한마당은 코로나-19로 대면행사가 어려웠던만큼 사전예약 호응이 높았다.

대표 체험내용으로는 안중근기념관(안중근의사와 함께한 156일의 기록-팝업북만들기), 도산안창호기념관(스칸디아모스 키트만들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독립운동가 매직큐브만들기) 등 각 기념관 별로 특색있게 10여개 독립운동 체험이 진행됐다.

한편, 매헌기념관은 상하이의거 90주년을 기념해 서예전시회, 탄신음악회, 특별전시회, 시낭송대회, 전국서예휘호대회, 국제학술회의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했다.

<매헌 윤봉길 의사(1908~1932)>

매헌윤봉길의사는 1908621일에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황과 모친 김원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덕산보통학교 2학년, 일본식민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한 뒤 서당에서 신구학문을 공부하고 19세부터 야학개설, 농민독본저술, 농촌부흥운동 등 계몽운동을 전개하다가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1930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장부가 길을 나서니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을 남기고 망명했다. 1932429일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축하와 상하이사변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물통형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 및 일본수뇌들을 처단 응징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침체되었던 항일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또 피지배 약소국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윤의사의 의거에 감동받은 중국의 장제스(將介石)주석은 중국민 4억명과 100만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하고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한 1933년 김구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을 초청하여 이듬해 뤄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고, 1940년 광복군 창설 및 중경 한인교포 생계비 등도 지원해주었다. 194311월 카이로회담에서 장제스는 연합국 수뇌들을 설득하여 일제 패망 후 한국의 자주 독립을 약속하였고, 이를 카이로선언문에 명기하였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독립국가가 되는 최초의 국제적 약속이었다.

윤의사는 의거 후 일본상하이 파견 헌병대에 피체되어 그해 525일 상하이파견 군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구금되었다. 이후 일본 가나자와시(金澤市)로 압송되어 19321219일 총살형으로 25세에 순국하였다. 가나자와시 교외 공동묘지 쓰레기장 도로에 암매장되었던 유해는 김구선생의 지시로 1946년 발굴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장으로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 안치하였다. 정부는 윤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